대승한지마을

대승 한지마을 소개

“대승한지마을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뛰어난 고려지(紙)의 원산지입니다.4백여년 전부터 뛰어난 수질의 맑은 물과 닥나무 재배로 전통한지를 생산해왔습니다.”

대승한지마을은 소양~동상면간 2차선 도로변에서 약 20m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써, 마을 진입 입구는 좁으나 안은 넓은 항아리 모양의 마을로 노승 출동형 형태를 갖추고 있는 지형이며, 마을 앞산은 승래봉(일명 문필봉) 마을 뒷산은 두리봉으로 마을전체가 안정된 형태.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전원마을로서의 수려한 산수를 완벽한 형태로 보존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대승한지마을전경,한옥스테이

전통한지문화 컨텐츠의 보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뛰어난 고려지(紙)의 원산지(과거 전주부에 속한 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한지생산지로 명성이 높았음)로서 불과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전국 최고의 한지생산지로서의 명성이 높았던 지역 입니다.

4백여년 전부터 뛰어난 수질의 맑은 물과 닥나무 재배로 전통한지 생산에 마을 대다수 주민이 참여해 한지생산과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완주군 소양면의 한지업체 15개 중 신원리 권역 내에 10곳(상리 5곳, 복은동 2곳, 대승리 2곳, 실리골 1곳)의 전통한지 생산 공장이 있었습니다.

현재 한지공장 유적 9곳, 장인 수준의 한지생산기술 보유자(전문 초지공) 10여명이 거주하고 있어 최근 한브랜드 및 한스타일의 대표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는 한지의 명소로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마을입니다.

다양한 전통문화 보유

석기시대 유적지, 서당 및 서원, 문중 제각(4곳), 연자방아 등 역사문화 및 전통생활문화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단순 농촌문화체험이 아닌 전통생활문화 체험을 포함하여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체험 프로그램이 가능한 마을입니다.

대승한지마을의 역사와 유래

마을역사
  • 백제건국(서기 기원전 18년) 이래 변동 없이 전주에 속함.- 이후 서기 1760년 영조 36년 전주시에 전주부는 32개 면으로 비로소 소양면이라는 면명 기록.
  • 서기 1914년 소양면 초대면장이 임명되었고, 1986년 10월 1일 주민 조직개편으로 대승리가 법정리가 됨.
  • 본래 전주군(1935. 10월 이후는 완주군) 소양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신원리, 대상리, 대중리, 대하리,   북은리, 용문리, 반곡리, 신안리를 병합하여 신원리라 함.
  • 대승리는 석기시대 흔적인 불모총, 석관묘가 발견되었고, 주위에 시종하던 여인묘에서 석도, 활촉 등이 발견되었으며,   장자밭이라고하는 집터가 있음.
  • 하리는 임진왜란 때 진사 이영일이 피난 온 이후로 이씨 후손들이 주거함.
  • 상리는 홍씨의 선조인 홍여심이 여묘를 살았고, 이후 삼사대를 여묘살이하여 이후 후손이 번창하였음.
  • 사기점골(사기 굽는 곳)이 있고, 저자들(장터), 사정들(활터)이 있으며, 골짜기마다 사람이 주거한 흔적이 남아있어, 마을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음.
지명유래
  • 대승(大勝里. 大中里) 부분명-원앙리(원앙골).
  • 대승(大僧)이라는 지형이 노승출동형이라 하여 옛적엔 大僧리라 불렀으나 도중에 大成리라 바뀌었고 大勝리로 다시 변  함. 원앙골은 대승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원앙새가 많다고도 함.
  • 장자골(밭) : 장자가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큰아들에게 산기슭의 명당에 살도록 했다고 함.
  • 서당골 : 대승산 자락에 있는 서당터를 일컫는 말로 실제로 그 터에는 주춧돌 등의 흔적이 남아있음.
  • 기와막거리 : 하리의 논 가운데 위치한 기와가마터에서 유래된 이름.
  • 사기점골ㆍ사기도장골 : 사기를 구워내던 가마터가 있었던 마을을 이름.
  • 젯골 : 제사 지내는 곳을 이르는 명칭으로 대승리 일대에는 제각이 많음.
  • 망바우봉 : 전주 이씨가 임진왜란 때 피신을 와서 망을 보던 봉우리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옥녀봉 : 대승리 건너 실리골에 있는 산이름으로 산세형상이 여인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엎드려 머리 감는 자세와 같다   고 전해짐.
  • 신래봉 : 주산인 대승봉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이성계의 신하들이 만육 선생을 모시기 위해 왔다갔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 왕정리 : 최만육 선생의 절친한 친구인 태조 이성계가 만육 선생을 모시기 위해 찾아와 머물렀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 여막골 : 홍씨 가문의 선조 홍여심이 부모님 상을 당한 후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후 삼사대를 여묘 살다가 상리마을에 터  를 잡게 되었다고 전해짐.
  • 저자들 : 상리마을 입구 왼쪽 공터에 있는 장터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소양, 동상, 진안, 마령 등지의 주민들과 각지의 상  인들이 한지등 이곳의 특산품을 구입하고 각종 물품을 교류하던 시장이었다고 함.
대승한지마을 관람안내 / 3월~11월 09:00~18:00 12월~2월 09:0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숙박예약 주변관광안내 찾아오시는길 기념품 TOP